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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의 실내용 관모, 유건유건(儒巾)은 유생들이 도포(道袍)나 창의(氅衣)를 입을 때 머리에 쓰던 검은 베로 만든 실내용 관모이다. 그 모양을 본 따 민자관(民字冠) 혹은 민자건(民字巾)이라고도 하였다. 넓은 의미로 생원ㆍ학생ㆍ사인(士人) 등 유생이 착용하던 관건(冠巾)이라고 할 수 있다.중국의 유건은 대[竹]로 엮어 검은 베로 싸거나 종이를 바르고 옻칠을 하였는데 그 모양은 단정하고, 뾰족하지 않게 모를 접은 형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건은 검은색 모시나 베로 만들었다. 착용은 성균관 안이나 집안에서만 썼고, 거리에서는 쓰지 않았다.

유건을 거꾸로 쓰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유건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혼란이 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의하면, 민자건은 그 모양이 뒷면은 마치 벽처럼 꼿꼿하게 서서 굽혀지지 않고, 위를 조금 굽혀 숙여서 앞면이 되도록 하면 남은 폭이 양쪽 옆으로 벌어져 귀가 된다. 이 양쪽 귀를 반쯤 접어서 판판하게 하면 민자(民字) 모양처럼 된다. 그래서 유건을 민자건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앞면과 뒷면이 서로 바꿔지게 만들었으니 해괴한 일이라고 하며 비판하고 있다.추계 윤효손(楸溪 尹孝孫)의 문집인 『추계문집(楸溪文集)』에 의하면 “전사(前士) 후민(後民)이 유건의 제도를 만들어 관유(館儒)로부터 각 지방 향교까지 500년간 사용하여 왔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유건을 거꾸로 착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위의 기록에 의하면 유건 정수리 부분의 접은 면이 앞쪽으로 오게 쓰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옷이나 모자는 통상 재봉선이 있는 쪽을 뒤로 하기 때문에 접은 부분이 뒤쪽으로 가도록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과는 반대이다. 또한 한일 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부끄러움에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들이 모두 유건을 거꾸로 쓴 이후로 모두 거꾸로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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